중국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김한규교수 ‘천하국가’

경향신문 기사전송 2005-06-19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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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으로 한·중간 갈등이 고조되던 지난해 김한규 서강대 교수는 한동안 마음고생을 겪어야 했다. 당시 김교수는 막 출간한 ‘요동사’(문학과지성사)라는 책을 통해 “만주는 요동국의 영토”라는 논지를 폈다. 이에 대해 ‘만주는 고구려 땅’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반민족주의자’라며 그를 몰아붙였다. 중국인들은 중화인민공화국을 해체하려는 ‘분열주의자의 책동’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김교수는 “국내 학자들까지 정치적 상황에 휩쓸려 학문적 성과를 비판하는 것을 보고 씁쓰레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스스로 전공을 “전통시대의 동아시아사”라고 말하는 김교수의 저서 ‘요동사’는 요동의 역사를 통해 중국사의 전체상을 그려보려는 것이었다. 요동은 중국의 전통적 세계질서를 이해하기 위한 ‘케이스 스터디’일 뿐. 이후 케이스 스터디는 서역, 대만 등으로 확대됐고 그 결실이 또 한권의 책으로 엮였다. 최근 출간된 ‘천하국가’(소나무)는 전통시대 동아시아 세계질서를 천착해온 김교수의 연구 성과가 결집된 역작이다. 김교수는 9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현재’에 엄폐돼 있는 ‘과거’의 역사적 실체를 추적한다. 이 책에 따르면, 현재의 중국은 역사상 수많은 역사공동체가 만들어낸 통합국가일 뿐이다. 따라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을 역사적으로 해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김교수가 이 책에서 뽑아낸 역사공동체는 중원을 중심으로 한 중국과 초원유목 역사공동체, 요동 역사공동체, 서역 역사공동체, 티베트 역사공동체, 강저(羌低) 역사공동체, 만월(蠻越) 역사공동체, 대만 역사공동체 등이다. 김교수는 “전통시대의 이러한 역사공동체를 중국이라는 이름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중국’ 대신 ‘중국적 세계질서’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김교수의 논리에 따르면 거란, 여진, 몽골의 한국침략은 결코 중국의 침략이 될 수 없다. 요동지역 역사공동체의 침략일 뿐이다. 이 책은 이처럼 ‘중화주의’라는 이데올로기로 치장된 중국을 해체하며 전통시대 동아시아 국제관계와 세계질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물론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이 과거 역사공동체를 통합 지배하고 있다고 해서 중국이 과거 역사공동체로 분열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김교수가 중국과 한국에서 각각 ‘중국 해체주의자’나 ‘반민족주의 역사학자’로 비난받아서는 안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작업은 역사의 현재성이나 현실의 정치성에서 멀찍이 벗어난 학문적 활동이기 때문이다. 〈조운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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