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근씨 처조카 간첩혐의 40년만에 ‘무죄’

경향신문 원문 기사전송 2008-12-1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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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21년 감옥살이… 허무할 뿐”ㆍ법원 “中情이 조작”… 재심끝에 누명 벗어

“피고인들은 이제 법정 밖으로, 세상 속으로 나가도 좋습니다.”

위장귀순한 이중간첩으로 몰려 1969년 사형당한 이수근씨의 간첩행위를 도운 혐의로 21년을 복역한 처조카에게 40년 만에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고법 형사6부(박형남 부장판사)는 19일 이씨의 처조카 배경옥씨(70)에 대한 재심에서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씨의 도주를 도와줬다는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던 외조카 김세준씨(61)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이던 이수근씨는 1967년 3월 귀순했으나 69년 1월 위조여권으로 출국했다가 베트남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체포됐고 간첩 혐의로 같은 해 7월 사형이 집행됐다. 당시 베트남에 살던 배씨는 동생 결혼식 참석차 한국에 왔다가 “자유를 찾아왔는데 남도 북도 싫고 중립국으로 가고 싶다”는 이씨의 스위스행 망명에 동행했다가 함께 체포됐다.

배씨는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뒤 21년을 복역하고 89년 출소했다. 그가 출소한 뒤 결혼을 앞두고 있던 아들은 ‘간첩의 아들’이라는 굴레를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배씨는 2005년 재심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이수근씨를 위장간첩으로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1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이수근 이중간첩사건은 중앙정보부의 조작”이라고 발표했지만 법원 판단은 처음이다.

재판장은 선고에 앞서 “40년 전 일어난 정치 수사와 재판의 문제점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장은 “피고인들은 중정에서 고문과 구타 등 가혹행위로 자백을 강요당했고 검찰은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증거는 기록조차 하지 않고 형식적인 수사로 일관했다”고 말했다. 법원에 대해서도 “피고인들은 공판에 이르러서야 국선 변호인을 선임받았고 1심과 2심을 거치며 진술내용이 바뀌었으나 재판부는 추가조사도 하지 않았다”며 “피고인들 인권의 마지막 지킴이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재판장의 선고가 끝나자 방청석에서는 박수가 터져나왔다. 법정에서 박수는 금하지만 이날만은 제재가 없었다.

배씨는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허무합니다. 기뻐야 하는데 기쁘지 않아요. 제 인생 황금기를 그 안(교도소)에서 다 보냈기 때문에…”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수근 간첩사건

1967년 3월 북한 김일성 주석의 수행기자 출신으로 조선중앙통신 부사장인 이수근씨가 판문점을 통해 귀순했다. 이씨는 대대적 환영을 받으며 거액의 정착금을 받고 대학교수와 결혼했으며 중앙정보부 직원으로 특채됐다. 이씨는 69년 1월 처조카 배경옥씨와 함께 홍콩으로 출국했다가 4일 만에 베트남에서 중정 요원에게 체포돼 압송됐다. 중정은 이씨를 위장귀순한 이중간첩이라고 발표해 기소했다. 1심 법원은 이씨와 배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씨는 그해 7월2일 사형이 집행됐다.

<장은교기자>

이수근씨 처조카 간첩혐의 40년만에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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