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롬은 평생 죄를 업고 살아야 한다?

오마이뉴스 기사전송 2002-11-22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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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모르는데…." 그는 자신이 채 마시지 않은 커피잔을 들고 금세 자리를 일어선다. 담배를 입에 물던 동료 직원도 자리를 피한다. 지난 11월 21일 오후. 서울 구의동 테크노마트 14층 새롬기술 휴게실에서 만난 직원들에게 말을 붙이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회사 입구에는 사무실 기자재가 널려있다. 테크노마트로 이사온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아직 정리가 안된 상태였다. 사무실도 어수선하긴 마찬가지였다. 입구에는 사무실 이전을 축하하는 각종 꽃들이 줄지어 서있고, 통로 주변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이삿짐이 그대로 쌓여있었다. 직원들의 빈자리도 눈에 많이 들어왔다. 기자를 맞이한 홍보팀 관계자는 "아시다시피 검찰 소식(오상수 사장 구속영장청구)이 전해진후 사무실 분위기가 크게 침체돼 있다"면서 "직원들에게 접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입구 옆문으로 들어간 휴게실 한쪽 면은 그동안 새롬기술이 정부와 언론사 등으로부터 받은 각종 인증서와 상장, 상패, 사진 등으로 채워져 있다. 휴게실의 한 직원은 "저 사진하고 이것만 보면 돼요"라며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하나는 청와대사진기자단이 지난 1997년 당시 김영삼대통령이 벤처기술 관련 행사에 참석해, 오상수 사장으로부터 통신기술을 설명받는 사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지난 2000년 청와대가 김대중 대통령이름으로 정보문화대상 수상단체로 선정된 새롬기술에 준 상장이었다. 그 직원의 얼굴에는 냉소적인 웃음이 뒤따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새롬기술의 한 직원은 "더 이상 옛날 이야기는 꺼내고 싶지 않다"면서 "최근 2년여동안 이른바 벤처 거품이라며 외부에서 온갖 나쁜 말이 나돌 때 새롬이 최전선에서 모든 매를 맞고 있었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얼마전에 회사를 퇴사했다는 A씨는 "그동안 윗사람들의 싸움으로 직원들의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면서 "하지만 오 사장이 그렇게 빨리 들어갈지(구속될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직원들이 무슨 죄가 있겠느냐"며 "회사에서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고 난 후, 밖에서 들려오는 말들 때문에 힘이 빠졌다"고 말했다. 입사한 지 얼마 안돼 상황을 잘 모른다는 B씨는 "이쪽으로 자리를 옮길 때 주변에서 이상한 말들을 듣기도 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보겠다고 들어왔는데…"라면서 "솔직히 분위기가 어수선해 일손이 잘 안 잡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사무실로 들어가는 직원들의 뒷모습에는 여전히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짙게 배어있는 듯했다. 신문과 방송에서 연일 쏟아내는 '오상수 사장의 구속'은 그들에게는 메아리일 뿐이었다. 한때 3조7000억짜리 회사가... 21일 검찰에 구속된 오상수(37) 새롬기술 사장은 벤처신화의 상징으로 통한다. 지난 1993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과 석사과정이었던 오 사장은 동기 5명과 함께 새롬기술을 설립했다. 첫 작품은 PC통신용 소프트웨어 '새롬데이타맨'. 당시 이 프로그램은 컴퓨터 사용자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업계에서도 '무서운 아이들'로 주목을 받았다. 이들이 벤처의 신화로 떠오른 것은 지난 99년 8월 코스닥시장에 등록하면서부터다. 당시 정부차원의 벤처 지원과 '묻지마 투자'가 맞물리면서 새롬기술의 주가는 500원짜리가 한때 32만원까지 올랐다. 640배가 뛴 것이다. '코스닥의 황제주'라는 말이 나돌았고, 주식만 따지고 볼 때 회사 시가총액은 3조7000억원에 달했다.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 등 국내 내로라 하는 제조업체의 규모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했다. 당시 거품이라는 말을 꺼낸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취급받기 일쑤였다. 당시 20만원의 새롬 주식에 투자했다는 삼성동 L통신벤처업체의 김아무개(38) 사장은 "당시 업계에서 새롬에 대해 버블(거품)이다, 어쩌다 말을 했다가는 매장당하는 분위기였다"면서 "오로지 어떻게 하면 우리도 새롬처럼 가느냐가 주요 관심사였다"며 회고하기도 했다. 이후 새롬은 거품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무색할 정도로 너무 쉽게 가라앉고 있었다. 흙탕질 경영권 분쟁에 직원들은 거리로 새롬이 가라앉게 된 결정적인 배경에는 지난 99년 당시 획기적으로 보였던 인터넷 무료 전화서비스 '다이얼 패드(Dial Pad)'가 중심에 있다. 평소에도 자식같다는 말을 할 정도로 사업에 애착을 보였던 오 사장은 2년여 동안 800억원이라는 거액을 쏟아 부었다. 물론 돈을 벌지 못했다. 여기에 문어발식으로 늘렸던 자회사들의 수익성도 크게 악화되기 시작하면서 점차 자금줄이 메마르기 시작했다. 지난 2000년 2월 유상증자로 3700억원의 현금을 확보한 오 사장은 미국과 국내에서 본격적인 다이얼패드 사업을 개시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미국 다이얼패드 현지법인이 파산위기를 겪으면서 경영 실패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도 했다. 미국 현지법인의 파산이 정리되면서 오 사장은 화려한 국내 복귀를 준비했다. 올 6월 오 사장은 다시 새롬기술 사장으로 복귀했지만, 회사는 '예전의 새롬'이 아니었다. 한때 새롬과 사업 파트너 관계를 가져왔던 새롬벤처투자 홍기태 사장은 새롬기술 지분 11%를 확보하면서 경영권 인수에 나섰다. 사실상의 적대적인 기업인수합병이었다. 3개월여 동안의 '오-홍간의 경영권 분쟁'은 내부고발자에 의한 분식회계와 검찰 고발 등으로 새롬의 실체가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지난 20일 검찰이 오 사장에 대해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경영에서 물러나겠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지난해 11월 쫓기듯 미국으로 가면서 새롬을 떠난 지 꼭 1년만의 일이다. 다만 이번엔 미국이 아니라 구치소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새롬, 원죄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결국 코스닥 벤처신화의 상징으로 꼽히던 오 사장은 검찰 구속과 경영권 분쟁에서 패배하면서 처참하게 무너졌다. 그렇다고 당장 새롬기술이 문을 닫거나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달 13일 새롬의 새로운 경영진으로 취임할 것으로 예상되는 홍 사장 쪽은 "당분간 새롬기술의 사업을 이어가되, 새로운 사업과 비전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또 한차례 대규모의 사업과 인력 구조조정 회오리에 휘말릴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홍 사장 쪽은 그동안 오 사장이 '다이얼 패드'에 너무 집착해왔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이를 대체할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준비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2차례에 걸친 구조조정으로 한때 250명에 달하던 직원수는 90명까지 줄어든 상태다. 핵심기술에 대한 직원들의 유출과 심적 동요도 심하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새롬기술의 한 직원은 "그동안 여러 차례의 사업 변경이 있었다"면서 "결과적으로 그 과정에서 희생된 것은 직원과 새롬을 믿고 투자한 주주들 뿐"이라고 말했다. 벤처업계의 신화로 불렸던 새롬의 몰락을 결론짓기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새롬 사태'로 길거리로 나온 많은 노동자와 가족들, 새롬을 믿고 투자했던 많은 일반 국민이 느껴야 했던 '배신감'은 앞으로 '새롬'이 짚어지고 가야할 원죄(原罪)로 남게 됐다./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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