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팬의 ‘우결’-포항팬과 울산팬, “우리 결혼해요.”

[스포츠서울닷컴 | 김현회기자] 과격한 K-리그 서포터스의 행동이 종종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는 요즈음. 특히나 그 중 일부는 상대팀 팬에 대한 도발을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애정표출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모든 K-리그 축구팬이 그런 것은 아니다. 여기 알콩달콩 사랑을 키워 드디어 결혼에 골인하는 K-리그 팬 커플이 있다. 놀라지 마시라. 심지어 이 커플은 각각 둘째가라면 서러운 ‘명문구단’ 포항스틸러스와 울산현대의 팬이다.

포항 팬인 김유탁(28세) 씨와 울산 팬인 정수진(29세) 씨가 약 2년간의 열애 끝에 오는 12월 20일 울산MBC컨벤션웨딩홀에서 빅매치, 아니 웨딩마치를 올린다.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축구팬 배우자’를 만나게 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둘은 지난 2007년 1월 처음 만났다. 축구팬답게 이 커플이 처음 만났던 장소는 축구 커뮤니티의 MT 장소. 김유탁 씨가 운영하던 축구 커뮤니티와 정수진 씨가 활동하던 축구 커뮤니티가 합동 MT를 가게 돼 처음 대면하게 된 이 둘은 이후 하루에도 몇 시간씩 전화 통화를 하면서 급속도로 친해져 연인으로 발전했다.

이 예비부부는 서로 응원하는 팀이 다르지만 연애를 하면서 ‘서로의 팀 존중’을 ‘연애 수칙 제1호’로 정했다. 예비신부 정수진 씨는 “서로 자기 팀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강한지 알기 때문에 신랑에게 울산을 응원하자고 강요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예비신랑 김유탁 씨도 “나도 신부와 같은 생각이다”라면서 “하지만 내가 두 번째로 관심을 갖는 팀이 울산인 반면 그녀는 여전히 포항을 싫어한다”고 웃었다. 이 커플은 서로 이 문제로 단 한 번도 다툰 적이 없단다.

이 커플의 데이트 장소 역시 대부분 축구장이었다. 이 둘은 울산과 성남이 울산에서, 포항과 부산이 부산에서 3시간 차이로 경기를 갖자 부랴부랴 울산에서 부산까지 이동해 하루에 두 경기를 모두 볼 정도로 축구 마니아다. 또한 지난해에는 단둘이 경남 창원에서부터 경기도 성남까지 K-리그 플레이오프 전 경기 투어를 나서기도 했다.

이 커플에게는 포항과 울산이 맞붙는 ‘부부더비’를 지켜보는 자신들만의 방식도 있다. 서로의 골대 뒤 서포터스석이 아닌 일반석에서 나란히 각자의 유니폼을 입고 손을 잡은 채 경기를 지켜보는 것이다. 물론 이 방식은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란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함께다. 포항과 울산의 경기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우리의 부부생활에 비하면 이는 길어봐야 일주일짜리 화제일 뿐이다.” 예비신랑 김유탁 씨의 듬직한 말이다.

“훗날 태어날 2세에게 응원 팀을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뱃속에서 10개월을 포항과 울산 경기만 볼 텐데 다른 팀을 선택할까에 대해 의문”이라는 이 예비부부는 웨딩 촬영 때에도 각자의 유니폼을 입고 색다른 모습을 연출했다. 김유탁 씨는 “사진사가 우리를 보고 ‘뭐 이런 놈들이 다 있나’하는 표정이었다”면서 사진사가 자신들에게 ‘축구 선수냐’고 물었던 일화를 웃으며 털어놨다.

이 둘은 신혼살림을 차리는 수도권에 포항과 울산이 나란히 원정 경기를 오면 각자 경기를 보러 가고 경기 뒤풀이는 무조건 집에서 하기로 이미 합의까지 마친 상태다. 울산이 이기고 포항이 지는 날이면 이 신혼집에서 신부의 웃음소리와 신랑의 절규소리가 동시에 들려올지도 모를 일이다.

“서로의 생각을 내세우기보다 존중하고 이해하면서 오랜 친구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김유탁-정수진 예비부부. 이들이 부부싸움을 할 경우 자칫 K-리그 서포터스간의 폭력 문제로 비화될 수 있으니 부디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란다. 이 둘의 바람처럼 황혼까지 서로 손을 맞잡고 축구를 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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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김유탁-정수진 예비부부 제공>